원화의 역사 변천사

원화의 역사 변천사

돈 돈의 발생은 경제 생활과 관련이 있다.자급 자족을 하던 생활에서 잉여 생산물이 태어난 물물 교환을 하고, 조가비와 가축, 곡물류 등의 물품 화폐를 사용하게 됐다.이후 한국으로 규격화된 화폐가 주조, 유통하기 시작한 것은 고려 성종 15년(996년)에 등장한 “철전”이 처음이다.1678년”상평’통보”이 등장하는 화폐의 사용이 확대됐으나 대한 제국 말기까지 화폐는 지금처럼 거래의 수단으로서 확고한 위치를 차지하지 못 했다.

중앙은행.

1909년 11월 한국 최초의 중앙 은행인”한국 은행”이 설립된다.한국 은행은 1910년 12월 1원짜리를 시작으로 5원, 10원짜리를 제조했다.1911년 2월”조선 은행 법”이 공포되어 8월에는 한국 은행은 조선 은행에 명칭이 변경된 광복 때까지 화폐를 발행했다.1910년 약 1,180만원에 불과하던 발행액은 1945년 8월에는 49억원에 달했다.1945년 8월 광복 이후에도 중앙 은행 업무를 계속하고 있던 조선 은행은 당시 심각한 인플레이션을 극복하지 못하고 식민지 금융 체제 청산에도 한계가 있었다.결국 1950년 5월”한국 은행 법”이 제정·공포되어 6월”한국 은행”가 설립되었다.1951년 10월”한국 조폐 공사 법”의 한국 조폐 공사가 설립되어 1952년 10월에 국내 최초로 새 한국 은행권 1천원권과 500원권을 발행하고 그 이후로 한국 은행권의 제조는 한국 조폐 공사가 맡게 됐다.한국 은행은 설립 직후에 발발한 6·25전쟁으로 전쟁 비용을 조달하고 인플레이션 수습에 역점을 두고 정전 후에는 경제 재건을 위한 금융 자금을 원활하게 지원하는 데 치중했다.

5.16 이후 정부 주도의 성장 중심 경제 정책을 위해 금융 제도를 개발 금융 지원 체제로 개편하고 정부의 역할을 크게 강화하는 방향으로 1962년 5월 「한국은행법」이 개정되었다. 그해 6월 10일 정부는 3차 통화개혁을 단행하면서 이전까지 통용되던 화폐를 10분의 1로 절하하고 화폐단위를 환율에서 원화로 변경했다. 1965년 이후 새로 도입된 가마판 인쇄 기술에 의해 화폐의 질은 향상되고 위폐 발생이 줄었으며 순수 국내 기술로 구리와 아연으로 주조된 10원화가 제조되었다. 1970년대에는 경제 성장에 따른 화폐 수요 급증으로 고액권인 1만원권과 5천원권이 발행되기 시작했다.

화폐 개혁

광복 이후 한국은 세 차례 통화 조치 및 화폐 개혁을 실시했다. 화폐개혁의 주된 목적은 경제적 이유보다 정치적 목적이 중요한 배경으로 작용했으며, 일부 화폐개혁은 긴급 통화조치와 병행되기도 했다. 첫 번째는 1950년 9월 북한의 적성 통화를 배제하기 위한 조치였고, 두 번째는 1953년 2월 과잉 구매력 제거와 재정·금융 및 산업 활동을 안정화하기 위한 조치였다. 마지막으로 3차는 1962년 6월 부정축재자금과 구 정권의 부패에 편승해 축적된 음성자금을 산업자금화하고 경제개발 5개년 계획의 투자자원을 확보해 악성인플레이션을 사전 방지하기 위한 것이었다.

3차 화폐개혁과 함께 100원권, 50원권, 10원권, 5원권, 1원권 등 6종의 화폐가 새로 발행됐다. 또한 소액 거래의 편의를 위해 1962년 12월 1일 10전권과 50전권이 발행되었다. 1970년대부터 현재의 액면 체계가 확립되어 1970년 11월 30일에는 100원, 1972년 12월 1일에는 50원짜리 은행권을 동전으로 대체하였다. 이후 거래 단위가 높아지자 1972년 7월에는 5천원권, 1973년 6월에는 1만원권, 2009년 6월에는 5만원의 고액권이 발행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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